게임을 일상으로, 일상을 게임으로

6. 종이와 펜, 그리고 어플. 도구에 대하여

기획자 해캄 2020. 3. 11. 01:34

나는 꽤 오래전부터 할 일 관리, 그리고 글쓰기, 그리고 공부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해했다.

세 가지 전부 내 인생을 망칠만큼 못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내 인생을 바꿀 만큼 잘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문득, 내가 이것들로 책을 쓰거나, 클래스를 준비하게 된다면 가장 첫 장이 무엇이 될지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나에게 딱 맞는 도구를 찾는다. 물론 도구 자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도 더러 있겠지만 분명 나같이 무언가를 잘하고 싶거나, 또는 잘하지 못한다고 여긴다면

그것을 시도하는 장소부터, 의자, 책상, 사용하는 도구까지 매우 예민하게 고를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다.

 

더욱 나를 지치고 고민하게 하는 요소는 어떤 행위마다 나에게 딱 맞는 도구는 다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암기를 해야 하는 과목을 공부할 때에는 매우 얇은 제트스트림 펜을 쓴다.(하얀 통에 들어있는 그 펜)

나의 생각을 함께 정리해야하는 경우는 같은 제트스트림에서 나온 펜들 중 0.5mm 이상의 3색 볼펜을 쓴다. 내 생각을 함께 정리해야 하는 경우에는 볼펜의 필기 속도가 내 생각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매끄럽게 잘 그려지는 두꺼운 볼펜이 좋다.

 

쏟아지는 자료에서 중요한 부분을 체크하고 정리해야하는 경우 던져도 되고, 막 써도 되는 BIC 볼펜을 쓰는 게 좋다. 그냥 그렇다.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 세 자루의 볼펜이 A4용지 사이로 이리저리 나뒹구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석사논문을 쓸 때 많이 사용했다.

 

요즘은 B5 밀크지를 구입하여 용수철 제본을 한 공책에 만년필로 필기하는 것을 즐긴다.

공부하던 시절에는 비싼 필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사치였지만, 요즘은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기도 하고, 

무언가 아! 이건 종이에 적어야겠다! 싶은 것들을 기록하게 되니 종이에 사각사각 적히는 그 느낌이 좋다.


요즘은 나만의 게임을 기획중이라 기획서를 쓸 때에도 주요 아이디어는 종이에 적어둔 후 PPT에 옮기면서 작성하는 편이다.(물론 너무 여러 곳에 기록하는 바람에 까먹는 거랑 비슷한 수준으로 기록물들을 잃어버린 곤 한다.)

 

할 일 관리에 있어서는 정말 끈질기게 나에게 맞는 도구들을 찾아나섰다.

오만가지의 다이어리를 다 사봤고(시간이 있었다면 써봤었던 다이어리 종류를 다 기록할 텐데! 쓰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날아갈까 봐 이 부분은 오늘은 못 적겠다.) 그 다이어리에 맞는 온 가지 펜들을 다 써봤다. 그게 안되자 디지털로 옮겨왔고, 주니어 개발자들이 초기 프로젝트로 만든 것 같은 투두 앱부터 7만 원이 넘는 옴니포커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어플들을 사고, 시험했다. 최근에는 펀딩 사이트에서 종이로 된 워크시트도 구매해서 이용해봤다. 기기도 아이패드, 아이폰, 노트북, 되는대로 다 써보는 중이다.

 

어쩌면 하나에 쉽게 질리거나 이건 내 방식이 아니야! 하는 마음 때문에 아직 못 찾았을지도 모른다. 본래 할 일 관리도 모두 훈련이고, 꾸준히 해야 적응이 되는 것을...

 

정말 다행인 것 중 하나는 내가 글쓰기에 있어서는 나에게 딱 맞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나는 블로그에 쓰는 글이 좋다.

물론 다이어리에 직접 손으로 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이내 내 손의 속도가 아무리 빨리 쓰려고 해도 내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과, 빨리 쓰다 보니 나의 악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마지막 결과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나는 길을 걷다가도 글을 쓰는 사람인데 그때마다 쓴 것들을 잃어버린다는 매우 큰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확실히 블로그에 쓰는 것이 나에게 딱 맞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안 보는 곳에 글을 쓰는 것은 마치 나만의 서랍장에 글을 넣어두는 것과 같아서, 글이 막히면 나는 완성을 하지 않은 채로 그 글을 닫아두곤 한다. 그렇게 완성하지 못한 글들이 너무나도 많다.

 

대신 이렇게 블로그에 공개글로 쓰면, 희한하게 완성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 없이 일필휘지로 휘두르는 글이지만, 이 인터넷 공간 어딘가에 흩어져 누군가가 볼 수도 있다는 그 사실에 뭔가 기분이 좋다.